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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시인) |
가다가 또 멈추면 쉬었다 가면 되지만
이 밤이 언제 끝나려나 잠도 쉬 오지 않아
5등 열차 5등 인생만 싣고 달리는 완행열차
김천-대신-아포-구미-사곡-약목-왜관-연화-신동-지천-대구
구린내 찌린내 젓갈 냄새 막장 냄새
청처짐한 우리네 삶을 싣고 흔들리며
산나물 인절미
고추 장수 미역 장수
한 소쿠리 한 보따리
다 판들 몇 푼이나 될까 젖은 꿈을 담고 흔들리며
저승꽃 얼굴에 핀 노파는 밭은기침으로 잠 못 이루고
푼더분한 저 아가씨 시집가서 잘 살 수 있을래나
헛헛한 김에 소주 한 병 오징어 한 마리
밤잠 없는 노인네한테 술잔 권하게 되었지
땅 파먹기 싫다고 아들 셋 대처로 다 달아나
장사 밑천 해야겠다고 땅 잡히라니 미칠 노릇이여
작년부터 막내딸이 무신 병인지 시름시름 앓는데
큰 빙운에 입원도 못 시키고 …… 현금이 있어야제
시상이 아무리 모질어도 젊으니 얼마나 좋은가
치받이가 있으면 내리받이가 있고
에움길이 있으면 올곧은 길이 있네 잘 마셨네
생애의 종착역에 선 노인의 주름살이 골 깊다
한숨과 욕설, 잔기침과 너털웃음, 차창 밖은
외진 마을 잠들어 있다 간이역에 내리는 사람 겨우 두셋
그리운 마음, 아픈 사연들을 싣고 달리는 야간 완행열차
뚝심 좋게 달려라 새벽이 오는 길로 놓인 저 선로 위를
■ “괘액―” 하고 완행열차가 경적을 울리면 마음은 벌써 대구의 외할머니, 외삼촌 곁에 가 있다. 으레 아버지가 지은 곡식 자루나 집에서 기른 닭을 보자기에 싸잡아 안고 간다. 김천을 출발해 대신, 아포, 구미 …. 낙동강이다. 6·25 때의 포탄 흔적이 남아있는, 무너진 철교 곁을 지날 때면 이 기차가 무사할까 스릴도 느껴진다. 기다림도 지쳐 지천역에 다다라서야 이제 대구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둘기호로 남아있던 완행열차. 느리지만 소박한 사람들의 호흡과 애환과 인정과 승객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쓰리꾼(소매치기)도 볼 수 있었다. 한 등급 위가 무궁화호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잘 살고 있는가. 하지만 기계문명의 발달이 우리네 서민의 기억을 넘어 정서와 풍속까지를 담보하지는 못하나 보다.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