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자 갑진년 푸른 용의 해이다. 새해 일출은 지인들이 카톡이나 페이스북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대신했다. 오전 10시부터 지인들에게 전화로 새해 인사를 했다. 나보다 연장자도 있고 동갑도 있고 십년 이상 손아래도 있다. 인사 중에 공통으로 들어간 게 조복(造福)이다. 조복은 복을 만든다거나 복을 짓는다는 뜻이다.
김천구미역에서 기차를 탄 지 1시간 30분이 못 되어서 서울의 수서역에 도착했다. 조금 걸어 나와서 병원의 셔틀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길게 선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버스에 올랐다. 셔틀버스 기사는 아주 친절하다. 큰 목소리로 “… 출발합니다~~”와 같이 마지막 한 글자를 아주 길게 빼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반은 환자고 반은 환자를 따라온 사람이다. 예약, 진료, 수납 등의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검사 과정을 마치고 3시가 지나서 지하 1층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달게 먹고 넓은 복도 겸 통로의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선 나무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갑자기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야, 이렇게 쏟으면 어쩌란 말이야”라는 여자 아이의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아이가 음료수를 쏟아서 휠체어를 탄 여자 아이의 옷과 무릎을 덮은 담요가 젖고 바닥에도 물기가 흥건했다. 말을 한 것으로 봐서 여자 아이는 누나인 것 같고 남자 아이는 동생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동생이 들고 있던 유리 음료수병을 바닥에 떨어뜨려 깨고 말았다. 동생은 어쩔 줄 몰라 하고 누나는 계속 짜증을 냈다. 병원의 고단한 일정에 빵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쉬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멀거니 보기만 했다. 메고 간 가방을 뒤졌다. 양치도구, 우산, 필통, 책, 마스크, 빗, 수건, 그 중에 화장지도 있었다. 재빨리 아이들 곁으로 가서 여자 아이의 옷과 담요의 물기를 닦고 바닥의 물기도 훔쳤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새해 인사는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그 다음은 “건강하세요.”로 이어진다. 복을 받는다는 것을 굳이 한자로 표현하자면 수복(受福)이다. 수복은 상대방으로 대상이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새해 인사를 수복(受福) 대신에 조복(造福)으로 했으면 좋겠다. 내가 복을 짓는 것은 나에게도 복이 되지만 상대방도 내 복을 함께 받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두 가지는 조복이다. 복을 만든 나도 복을 받고 상대방인 주유소에서 만난 60대 운전자나 병원에서 만난 남매도 복을 받는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라거나 “말 한 마디에 뺨이 석 대”라는 속담이 있다. 모처럼 만난 친구에게 “친구야, 너 많이 늙었구나.”라고 한다면 내 복과 친구의 복을 동시에 걷어차게 되고 두고두고 어색한 감정을 갖게 한다. 반대로 “친구야, 자네는 옛날 그대로네.”라고 한다면 설령 그 친구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더라도 얼마나 기분이 좋은 말인가? 말을 하는 나도 말을 듣는 친구도 함께 복을 만드는 것이다. 대인 관계에서 좋은 말은 조복의 지름길이다.
그리고 내 건강을 지키는 것은 아주 좋은 조복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건강하면 자기 자신이 복을 받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이 건강이다. 내가 건강하면 배우자나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는 것이다. 건강한 몸에는 건전한 마음이 자리 잡는다. 흔히 “긴 병 끝에 효자 없다.”고 한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라고도 한다. 건강을 잃으면 조복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이들의 하루하루가 조복하는 참 좋은 날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