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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누정(樓亭)과 누정문학(樓亭文學) ②

민경탁(국어국문학자)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31일

            김천 최초의 누정, 개령 무민루(撫民樓)

김천에서 개령이란 지명은 통일신라시대(676∼935)에 생겨났다. 757년 감문군을 개령군으로 고쳐 상주령에 붙이고, 김산현, 지례현, 어모현, 무풍현을 개령군의 영현으로 두면서부터다. 김천지방 역사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누정은 개령의 무민루(撫民樓)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 태종〜세종 대에 이에서 남겨진 문학이 있다.

▣ 무민루(撫民樓)
-일명 개령문루(開寧門樓)

문루는 주민들의 실상을 관망하고 주위의 경관을 조망하며, 행정을 도맡던 관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이다. 아래에는 출입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며 출입 초소 기능을 한다.
오래 전 개령에 있던 관아의 문루였는데 현재 남아 있지는 않다. 감문산 근처 개령 동부리 관아 객관 동쪽에 있었는데 남쪽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오가는 벼슬아치 접대 및 휴식소 역할도 했다. 명확한 창립 연대는 알 수 없고 주위의 팔승정, 동락당, 추흥루, 낙원정과 함께 존재했다(금릉지, 교남지). 현 개령초등학교 남쪽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경상관찰사 이원(李原)이 이곳에서 지은 시가 전한다(『동국여지승람 제영사전』누정편).

○ 조선 초 세종 때에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호 容軒. 경남 고성 태생. 1368∼1430)이 1408년(태종 8) 7월에 경상도관찰사를 제수받았다. 그의 재임(1408 태종 8. 7.-1409 태종 9. 10.) 중에 개령 무민루에 들렀다 지은 시다. 오언율시 「제개령문루」인데 원문은『용헌집』권2에 있다.

題開寧門樓 개령문루를 두고 짓다
南行苦炎熱 남으로 가는 길, 찌는 볕에 시달리다가
一上納微 한 번 오르니 조금 시원하구나
喬木千章老 큰 키 나무는 천 그루 늙었고
高樓百尺强 높은 누각은 백 척이 넘는다
日移 竹影 해가 기우니 대그림자 성글고
風動碧荷香 바람 부니 연꽃 향기 풍긴다
坐久無塵想 오래 앉아 있으니, 속진 생각 없이
長吟到夕陽 길게 읊조리다 석양녘에 이른다

○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周世鵬 1495 연산군 1~1554 명종 9)이 개령을 지나며 무민루에서 남긴 시가 있다.

甘文故國新秋雨 감문국 옛 나라에 초가을 비 내리는데
白髮豊基太守行 백발의 풍기군수 이곳을 지나네
珍重東樓雙 酒 진중한 동루에서 두 술통을 나누니
百年靑眼使君情 한 생애 친한 벗, 고을 원의 정이라네

○ 조선 헌종(재위 1834-1849) 때의 박영무(朴永武) 진사는 「무민루서(撫民樓序)」에서 옛 감문국의 정취를 이렇게 노래했다(김천군지).

金孝王陵春草生 김효왕릉에 봄풀은 돋아나고
洪平章里暮煙橫 홍평장 마을에 저문녘 연기 비낀다
官人慣唱山花曲 관리들이 산화곡을 익숙하게 부르니
笛月樓頭耳暫明 적월루 머리에서 귀 잠시 밝아진다

▣ 팔승정(八勝亭)
팔승정

조선 말기 개령현 서면의 남산(南山 속칭 정자말랭이)에 있던 관아의 담 아래에 세운 누정이다. 1900년대 초에 개령현 동부리의 관아 앞으로 이전했는데, 지금의 것은 여러 번 중건, 이전한 것이다. 향토의 여러 역사서에는 인근에 동락당, 추흥루, 낙원정, 화학정이 함께 존재했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허혁 면장이 팔각형으로 신축하며 팔각정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1936년 수해로 붕괴된 것을 홍종익 면장이 다시 세웠다. 그 후 퇴락, 방치돼 오던 것을 1977년 백형주 면장이 보수해 다시 세우며 팔승정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개령 팔승이란 금오산의 운해, 감문산의 낙조, 개령들의 농요, 빗내마을의 농악, 계림사의 종소리 … 등등을 가리킨다.
옛날의 팔승정의 명성은 지금의 것과는 많이 달랐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관련한 시문들이 무민루의 것보다 훨씬 많이 남아 전한다.


○ 조선 숙종 때에 개령 현감을 지낸 장진환(張震渙 1646∼1722. 1708년 숙종 34-1712년 숙종 38 재임)은 이 고장을 9수의 시로 읊었다. 그 중 2수를 소개해 보면.

제1수
天地東西逈莫攀 천지가 동서로 멀어, 더위잡고 올라갈 수 없는데
金烏飛去落爲山 금빛 까마귀 날아가다가 떨어져 산이 되었네
使君五馬凌千里 고을원의 다섯 필 말로 천 리를 가벼이 달려
若木扶桑一日還 약목과 부상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제7수
古栢蒼松今獨留 옛날의 잣나무와 푸른 솔은 지금 홀로 있고
繁華遺 付沙鷗 번성했던 자취는 모래벌 갈매기에 부쳤네
離離草樹空山裡 무성한 풀과 나무는 빈 산을 다스리고
樵牧攀登動野謳 초목동이 더위잡고 오르며 들판을 진동케 노래하네

○ 조선 영조 때에 병조좌랑, 대구판관을 지낸 홍가상(洪可尙 호 豚菴 또는 詩山. 송시열의 문하생. 1649 인조 27∼1740 영조 16)이 팔승정에서 쓴 장시가 있다(부분).

岸草 正可隣 언덕의 풀은 무성하여 진실로 이웃할 만한데
新派 綠滿前川 새로이 일렁이는 푸른 물결은 앞내에 가득하네
西山日落牛羊下 서산에 해 떨어지니 소와 양은 내려오고
淸笛一聲橫暮煙 맑은 피리 소리 한 가락에 저녁연기 비껴 가네

○ 조선 후기의 문신 이민보(李敏輔 호 常窩· 墅. 1720 숙종 46∼1799 정조 23)는 개령현감을 지내며(1755년 영조 31-1757 영조 33) 감문국을 이렇게 노래했다.

一片荒山覇業留 한 조각 거친 산에 패업의 흔적 남아 있어
杜鵑啼罷弔沙鷗 두견새는 흐느끼고 모래밭 갈매기가 조상하네
數株肅瑟陵墟植 몇 그루 나무만 소슬히 능 터에 심어져 있어
松柏臨淄共短謳 송백 임치 공 땅 고사로 짧게 노래할 뿐이네
<계속>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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