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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공원 - 마중물

권경옥/수필가
최병연 기자 / 입력 : 2025년 02월 13일
ⓒ 김천신문
엄마와 나는 따끈한 탕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이제 살 것 같다며 따뜻한 물을 손으로 모아 어깨로 붓고 계신다. 날씨가 차가워지니 엄마의 몸도 경직되는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한발작 떼기가 무척 어려워하신다. 반복적으로 발을 떼려고 하지만 제자리에서 달팽이 걸음만 한다. 마음은 뻔한 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의 몸이 경직될수록 내 손은 더 많이 가야된다. 점점 할 수 있던 것들이 줄어든다. 내 생활이 없어지는 것 같다. 5남매가 있지만 오롯이 내 몫이다. 나도 엄마가 때론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휴대폰 단축키 1번으로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르신다. 내가 없으면 단추도 잠그지 못하신다. 보청기도, 양말도 신지 못하신다. 남편은 가족회의를 해서 대책을 세우라 하지만 각자의 형편과 처지가 엄마를 돌볼 입장이 아님을 알기에 혼자 담당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먼저는 내가 마음을 비워야 될 것 같다. 열심히 내 마음에 사랑 한 바가지 마중물 붓고 펌프질 해야겠다. 아직은 녹물이 나지만 펌프질하다 보면 맑은 물이 쏟아질 것이기에 오늘도 훈련한다.

유난히도 춥던 어린 시절 내 손가락은 얼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 어둠이 땅끝까지 내렸는데도 동네 어귀에서 머리핀으로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내 땅이 자꾸만 친구의 땅보다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쯤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어쩔 수 없이 친구에게 백기를 들었다. 내 이름 끝 자를 부르는 강약의 높낮이에 엄마의 기분이 배어있다.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엄마 뒤를 따라가는 나는 발에 걸리는 돌멩이를 툭 툭 차며 화풀이를 했다.

방안 따뜻한 곳에 들어가니 얼었던 손가락이 근질근질 가려웠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가락을 긁었다. 엄마의 얼굴이 날카로운 고드름 같아 금방이라도 툭 베일 것 같았다. 방광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바깥 후미진 화장실에 혼자 갈 용기는 없었다.
엄마가 두부 순 물을 따끈하게 데운 스테인 대야를 방으로 들여 놓으셨다. 동상에는 이것이 최고라시며 물이 식을 때까지 손을 담그라고 주셨다. 엄마 얼굴에 고드름이 조금은 녹고 있었다. 그렇지만 화장실에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기는 이른 것 같았다. 언 손을 두부 순 물에 담그니 따뜻하기도 하고, 근질거리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오줌은 더 마려웠다. 손을 담그고 두부 순 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얼마 지난 후 아직 두부 순 물이 그리 많이 식진 않았지만 내 방광이 용광로처럼 분출할 것 같아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물을 다시 데워야겠다고 대야를 들고 부엌으로 나갔을 때 반사적으로 나는 마당으로 나왔다.

그 사이 눈이 하얗게 내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에 어둠이 숨어버렸다. 아무도 밟지 않은 소복한 눈 위에 내 발자국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바지를 끌어 내렸다. 체온 밖을 나온 따뜻한 온기는 모락모락 김을 내며 점점 크게 눈을 녹였다. 수문을 연 저수지처럼 끝도 없이 눈을 녹이며 내 땅을 만들고 있었다. 친구에게 다 빼앗겼던 땅이 그제야 생각났다. 이건 내가 이긴 것이다. 새하얀 밤 환한 온기 속에 무서움도 잊었다. 내 땅이 얼마나 커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탕 속에 있던 엄마가 씻겨 달라며 내 등을 탁 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물속에서 땀을 많이 흘려 지쳐있을 엄마를 먼저 씻겨드리기로 했다. 거품을 잔뜩 머금은 타월로 몸을 닦아 준다. 여든 여덟의 엄마 젖가슴은 알맹이가 쏙 빠진 꼭지만 배 언저리에 걸쳐져 있다. 탄력을 잃은 살갗 위를 앙상한 뼈들이 툭툭 불거져있다. 내 엄마가 더디지만 사랑을 표현한 것처럼 나 또한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손과 발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최병연 기자 / 입력 : 2025년 0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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