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후보가 첫 일성으로 내놓은 공약이 충격적입니다.“기획재정부가 경제 기획을 하면서 한편으로 재정을 컨트롤하는 왕 노릇을 하고 있다”며, 사실상 기획재정부를 해체하겠다는 수준의 정부조직 개편을 예고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다시 분리하고, 예산 편성을 담당할 기획예산처를 대통령실 산하에 두겠다는 방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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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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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정부 내 합리적 조정과 협의를 통해 이뤄져야 할 예산 편성 과정을 대통령 직할로 두고, 국가 예산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휘두르겠다는 발상 입니다. 이미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이제는 ‘곳간 열쇠’까지 대통령이 직접 쥐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획재정부에서 30년 넘게 재정과 경제 정책을 담당하며 여러 차례 조직 개편의 과정을 직접 경험해왔습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 분리와 통합을 거치며 행정의 지속성과 연계성을 최대한 고려해 최적화된 형태로 자리 잡은 조직입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원이 재정경제부와 예산청으로 분리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 간 연계성 부족과 비효율 문제로 인해 2008년 다시 통합되어 오늘날의 기획재정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경제정책과 재정정책의 일관성과 조정 기능이 한곳에 모여 있을 때 국가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은 경제와 재정의 균형을 지키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특히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재정을 무분별하게 남용하려 할 때마다, 국민경제를 지키기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최후의 방파제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구상대로 600조가 넘는 국가 예산 편성권이 대통령실로 이관된다면, 예산의 정치적 중립성은 무너지고 국가 재정이 단기적 정치 목적에 따라 남용될 위험이 큽니다. 그 결과 재정 건전성이 파괴되고, 심각한 경우 재정 파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곳간 열쇠를 쥐어주고, 정부 내, 국회, 국민 그 누구도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예산 편성의 투명성이 악화되고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면, 대외 신뢰도에도 치명적 영향을 미칩니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 자본 유출, 금리 상승 등 경제 전반에 미칠 부정적 파장은 이미 남미 등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습니다.
또한 복합적인 경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상황에서, 기획재정부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세제, 재정, 경제 정책 간 유기적 연계를 파괴하고 행정 비효율과 정책 혼선을 초래할 것입니다.
정권은 5년이지만, 정부의 과업과 정책 역량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5년만 하고 떠날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부조직을 재단하고 행정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훼손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갑니다.
저는 기획재정부 권한 분산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는 이 같은 조직 개편이 가져올 부작용과 위험이 훨씬 크다고 확신합니다. 개인의 분노와 증오로 국가의 재정 시스템을 갈가리 찢겠다는 것은 국가 재정의 안정성, 경제정책의 일관성, 그리고 정부 내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폭거입니다. 저는 대통령실 소속으로 예산 편성권을 이관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