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립미술관이 있는 남산동은 김천의 근·현대미술사의 내력을 전하는 동네다. 김천 근대미술전이 가장 먼저 열린 곳이다. 1925년 11월 22〜23일 김천소년회가 주최하고 금릉여성회와 금릉청년회가 후원하여 김천청년회관(지금의 평화남산동)에서 “남조선소년소녀 현상양화전람회”를 개최하였던 것이다. 이 무렵 송병돈, 최목랑, 김수명 등의 화가가 김천 근대미술의 길을 열었다. 1953년 김천문화의 집이 생기면서 박인채, 배상현, 송준상, 김수현 등의 화가들이 “김천화우회”를 형성, 처음으로 김천미술단체전을 연 것으로 안다. 6·25 이후 지역사회에 기여한 많은 화가들 중 홍성문 작가가 김천 미술계에 끼친 공로는 각별했다. 1960년대에 도지호, 김호창 등이 주축이 돼 지역사회 출신 미대생들로 “제로회”를 창설, 이 고장에 많은 미술인 탄생 촉매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1991년 김병태, 김상욱, 김창길 등의 화가들이 주축이 돼 김천미술인협회가 조성되면서 지역사회의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향토사는 전한다.
지역사회를 지키는 많은 화가들 가운데 이번에 운 좋게 또 김상욱 화가의 향토적 인생관에서 우러나오는 미술 창작체험을 하게 된다. 그의 풍경화가 지닌 장소애와 기운이 눈길을 끈다. 특정한 재료 혼합 없이 담백하게 색을 입혀 자연의 모습을 재현한 작품엔 관조에 의한 그윽한 평온과 평안이 깃들어 있기 때문인가 보다.
화가 김상욱은 향토의 길과 물, 산을 자주 모티프로 활용하는데, 그 물은 가득 차 있고 길은 늘 고향 마을이나 그 어떤 곳으로 귀결하고 있다. 공명이나 출세를 지향하는, 외지로 가는 길이 아니다. 때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기도 하는데 그곳은 어디일까. 사람이 살아감의 근원일까, 아니면 궁극적으로 가야 할 안식의 장소일까.
김 화가는 색감으로 향토의 자연이 주는 풍치와 기운을 전한다. 특별한 표현 방식을 쓰지 않고 별난 욕심을 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향토애, 나아가 한국적 정감과 미감을 나타내면 족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에게서 자연은 살아감의 근원적 배경이요, 미술 작업의 영감을 얻는 장소이며, 생의 안위를 찾는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그는 일상과 자연과 미술이 만나 빚어내는 조형예술미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김천시립미술관에서 네번째로 여는 김상욱 화가의 개인전이, 향토의 자연과 작가의 인생관이 만나 빚어내는 의미 있는 기록유산이 될 것이다. 그의 건축 사업에도 이러한 예술혼은 항존할 것이다.
민경탁 시인·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