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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선생님.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습니다. 선생님 병실에 피어있던 그 생강꽃의 화관을 잘게 찢어서 날린 것 같은 향기롭고도 깨끗한 눈송이었습니다.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거리로 뛰어나왔습니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카아드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성스러웠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 향기롭고 깨끗한 눈송이가 뿌린 조화造花였습니다. 나는 그 속을 외로운 방랑자가 된 기분으로 걸었습니다. 아니 나는 정말 방랑자였습니다. 현실과 꿈 사이를 잠시도 쉬지 않고 헤매어 다니면서 나는 자꾸 현실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현실이란 정말 무서운 것이더군요. 그것을 회피하는 방법은 단 하나 죽음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현실은 내 체면도 자존심도 생각해 주지 않고 사형 집형리執刑吏의 손길처럼 무자비하게 나를 굴복시키려고 들더군요. 지금 내 핸드백엔 차 한 잔 값과 거처로 돌아갈 버스 값이 들어 있을 뿐입니다. 나는 차를 마시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훌쩍 거리로 뛰쳐나오고 싶을 때에 대비해서 아껴두고 싶은 것입니다. 당분간 돈이 생길 가망이 없을 것 같으니까 … .
그러나 나는 거처를 나올 때부터 K다방의 그 진한 커피 생각에 목을 태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언젠가 선생님과 노상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고 보니까 둘이 다 빈털터리었던 적이 있었지요.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게 해 놓고 돈 마련에 나섰지요. 한참만에 선생님은 돌아 오셔서 차 값은 든든하니 마시고 싶은 대로 몇 잔이라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한 잔밖에는 더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왼쪽 팔목에 끼어 있던 시계가 없어진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시계를 잡힌 얼마 안 되는 그 돈이 다 떨어지면서 선생님은 늑막염으로 눕게 되었지요. 약과 책 몇 권을 가지고 선생님 친구의 재실齋室로 요양를 떠나신 지도 어언 반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가 신록이 무성하던 5월이었습니다. 가을이 되어서야 겨우 여비가 마련되어 생강꽃의 화분을 사 들고 선생님을 찾아 갔을 때 선생님은 나 보다도 그 꽃을 더 반가워하셨습니다.
“이 꽃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여인을 나는 알고 있어.”
그러면서 선생님은 깊은 눈초리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시선을 생강꽃으로 옮겼습니다. 생강꽃은 정말 소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웠습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짜증에 지쳐버린 내가 그 꽃과 같을 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마 먼지로 그을리고 소음으로 낡아버린 삼류三流 다방의 네모진 외등 같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사 가지고 간 커피를 끓였습니다. 무척 반가운 표정으로 그것을 마시다가 선생님은 나머지를 그 화분에 조심스레 부어 주었습니다. 그토록 선생님은 생강꽃이 반가웠고 커피가 즐거웠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과 내가 알게 된 것도 생강꽃 때문이었습니다. 꽃 가게에서 생전 처음 만난 우리가 하고많은 꽃 중에서 생강꽃을 우연히 사 들었다는 것에 서로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 길로 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셨지요 두 잔씩 … . 그리고 선생님과 저는 아주 가까워진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빨아들이는 생강꽃의 향기는 생각 탓인지 더 강하게 발산되는 것 같았습니다. 땅에서 갓 뜯어온 풀잎과 나무에서 갓 딴 사과를 함께 으깨어서 만든 즙汁 같은 향기 … . 나는 그때처럼 소박하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여인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앓는 선생님을 위해서 말입니다.
“매일 조금씩 커피를 부어 줄테야. 그러면 이 꽃이 오래 피어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도 선생님의 그 생각에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생강꽃이 졌다는 선생님의 소식을 받고 나는 우습게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강꽃이 없을 때보다도 생강꽃이 피어 있다 져버린 후의 선생님 병실은 한결 더 쓸쓸하고 외로울 것 같아서였습니다. 곧 선생님 병실을 찾아가 다른 꽃을 갖다 놓아야겠다면서 또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군요.
이제 겨울.
지금 막 지나온 꽃 가게엔 게발사보텐의 빨간 꽃이 화려한 궁전의 산데리아처럼 눈부시게 피어 있었습니다. 선생님 병실의 창밖에 눈이 수북이 쌓였다는 소식이 올 때까지는 어떻게든지 그 게발사보텐을 사들고 또 한 번 찾아가야겠습니다. 어머니 유물인 털목도리로 얼지 않게 겹겹이 싸서 품에 소중히 안고 말입니다. 물론 생강꽃 같기야 하지 않겠지만 살풍경한 선생님 병실을 잠시나마 윤택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선생님은 필요없다고 하시겠지요. 생강꽃을 닮은 창밖의 눈송이를 보고 있으면 산골의 쓸쓸한 병실도 거기서 혼자 병과 싸우고 있는 자신도 얼마든지 윤택할 수 있다고요.
선생님 마침내 나는 다방엘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몇 달을 아니 몇 년을 거리로 못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은 커피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나는 구석진 자리에 벽을 향해 돌아앉아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의 찻잔에서는 커피가 짙은 향기를 실은 가느다란 김을 올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족한 건 선생님과 생강꽃뿐이군요. 어쩌면 나는 그것을 찾아 눈 내리는 거리에 뛰쳐나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머지않아 내가 바라는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믿고 이 고된 현실을 너무 짜증하지 않으렵니다. 그럼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희망 속에서 투병하시기 빕니다.
-『신한국문학전집 45권』 수필선집 2(어문각, 1979.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