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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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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터미널 2층 정형외과]
수필가 민병미 시외버스터미널 2층에 자리 잡은 정형외과는 작은 도시를 둘러싼 면 단위에서 장을 보러 나오면서 치료를 받고 가려는 어르신들로 주중 내내 붐빈다. 팔꿈치가 아팠던 나는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인대를 많이 쓰지 말라는 주의를 받고 정기적으로 검진과 치료를 받는다. 일찍 접수하려고 해도 새벽잠 없는 어르신들의 부지런함에 밀려, 나는 늘 뒷번호가 된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처음 보는 어르신들도 어디가 아프고 뭘 하다 아픈지 과거와 현재의 지병을 고스란히 알게 된다.
정형외과의 위치 특성상 새벽부터 접수해놓고 장을 보러 내려갔다가 늦게 올라와 진료 순서를 놓치고 접수 창구로 가서 큰소리로 “○○○왔대이”하고 확인하는가 하면, 다행히 순서를 놓치지는 않았지만 불룩한 장바구니를 어디에다 둘지 물색하다가 본인의 이름이 불리면 조금 전까지 소중했던 장바구니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허둥지둥 급히 진료실로 들어가기도 한다. 노상에서 장을 보고 들어와 차례를 놓친 한 어르신은 같은 마을에서 왔는지 한 무리에게 가더니
“세일 하는데 뭐하노 싶어 갔다가 장독 뚜껑 한 개 사고 올라 왔디만서도 벌써 내 이 름 불렀었다 카네. 앉아서 기다리란다. 자리도 없구만. 아이고 무시라.”
접수한 차례대로 불려 진료실로 들어가 원장님의 문진과 응답이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을 때, 옆에서 보조하는 간호사가 다시 또박또박 재차 크게 묻고 반복하여 안내하는 통에 밖에서도 진료 내용이 다 들린다. 대부분 오랜 농사일과 포도, 양파, 감자, 고추, 고랭지에서 특산품을 재배하여 가공하는 작업으로 무릎, 어깨, 허리, 목, 손목, 관절 등이 안 좋은 경우들이다. 골절 치료나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분들도 있고, 주로 어르신들이라 잘 안 들리는 분들이 많다.
원장님과 간호사는 자세히 알려주려고 하다 보니 큰 목소리가 되어 서로 소리가 높다. 거기에 자주 오는 익숙한 분들에게는 문진하는 말투가 반존대 말이다.
“아버님, 오늘은 어디가 안 좋아? 지난번에 주사 맞고 좀 나아졌다 했잖아.”
“으음, 어깨가 아파. 팔도 안 들리고 밤에 누울 때 등허리도 아프고 뒷목도 찌릿찌릿 해여. 아파여.”
“또 어디 아파? 그것 말고 다른 데 아픈 데는?”
“발목이 아파여.”
“어깨, 등허리, 뒷목 아픈 것하고 발목은 이유가 딴 거라. 발목 다친 적 있어요?”
“어릴 때 소 끌고 와서 헛간에 넣다가 부딪치고 삐었었지.”
“아이고. 어릴 때 말고 최근에, 요 며칠 사이에 다친 적 없어? 부딪쳤거나.”
“요새는 안 그랬고. 그라마 주사 안 주나?”
“발목 사진을 찍어봐야 아니까 일단 사진부터 찍고 와요. 사진 보고 나서 주사 줄게.”
그리고 방사선실로 안내되어 나가면 그다음 대기 중이던 사람이 진료를 받는다. 주사실과 처치실의 풍경도 비슷하다. 한편, 대기실에서 바라보면 물리치료실로 가는 방향을 묻는 환자, 사진 찍으러 방사선실로 가는 환자, 혈압 재는 환자, 수납하다가
“진단서 말고 의료비 받아내는 쪼가리(서류) 떼도.”
하는 어르신 등으로 정형외과 분위기는 시끌시끌 정겹기도 하고 소란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좌충우돌 시끌벅적하지만 일사불란하게 접수, 대기, 진료, 처치, 정산까지 질서있게 유지되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아까부터 어디선가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은 듯 유난히 시끄러운 소리에 차츰 불쾌해지고 모두의 시선이 소음이 들리는 쪽으로 향해지고 있었다. 진원지는 진료실과 주사실 사이였다. 진료실의 간호사가 나오더니, 떠들고 날뛰는 유치원 아이들 군기(?)를 잡기 위해 일부러 더 엄숙한 표정을 짓고 훈육하는 유치원 교사처럼 한 여자 어르신의 팔을 낚아채어 비교적 대기자가 몰려있지 않은 방사선실 복도에 데려다 놓고 나온다. 그 짧은 순간을 모두가 보았고 일제히 그 짧은 순간에 모든 전후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어르신은 정형외과에 와있는 상황을 영상통화로 딸에게 중계방송(?)하며 보고하듯 통화하고 있었다. 딸은 엄마에게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중이었다. 간호사의 활약으로 실내가 조금 안정되었다.
그런데 정형외과의 위치가 시외버스터미널 2층이라는 공간 특성상 자연스레 면 단위에 사는 주민들이 장을 보러 나왔다가 치료를 받으러 모여들게 된다. 그래서 늘 진료 대기자가 많고 오래 순번을 기다리다가 보면 지루하기도 하여 자연히 대기 순서를 안내하는 모니터를 보게 된다. 누가 지금 진료받고 있고 다음은 누구이며 내 순서는 언제인지 짐작하게 되고 나누는 이야기, 들려오는 소리에서 각자의 성향을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된다.
자연히 보고 알게 되지만 아픈 어르신들에게 가족이 보호자로 함께 동행하고 있는 경우는 제삼자 입장이지만 참 보기 좋고 고맙고 안심이 된다. ‘잘 살아오셨구나. 집안의 어른으로서 대접받고 계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보호자들이 든든해 보여 보는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한편, 어르신 부부 서로 보호자인 경우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분들의 살아온 세월이 보이고 서로 믿고 모든 걸 맡기는, 또 모든 걸 받아주는 모습에서 운명까지 같이 해온 동지애가 느껴지고 사람답게 참 잘 살아내셨구나 싶다. 물론 내가 본 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아프지만 멀리 있는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알리지 않고 홀로 속수무책 앓는 어른들도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기관장협의회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면내 마을의 실태를 조사하면 어른들은 시니어 일자리나 기초노령연금을 받기 위해 소득이 기준 이상을 넘지 않도록 자식들에게 재산을 돌려놓거나 일부 어떤 자식들은 강제로 그렇게 해놓는다고 한다. 소득이 있으면 자식들에게 모두 송금하고 실제 어르신들은 빈털터리로 궁핍한 생활을 한다고 하니 어른들이 맹목적으로 자식들에게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었다.
나는 친가나 시가에서 막내이다. 손위분들이 모두 정형외과에서 보게 되는 어르신들과 비슷한 연령층이거나 비슷하게 노화 중이며 같은 증상들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노파심인지 모르겠지만 정형외과에서 어르신들을 보면, 모든 어르신들이 현재의 가족 관계 속에서 삶의 질과 품위를 잃지 않고 존중받고 아플 땐 병원을 자주 찾고 예방하고 더 나빠지지 않게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가 일상화되길 바라게 된다. 몸이 탈 나고 병이 들었다는 건 살아온 세월과 함께 몸도 마음도 혹독하게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어르신들의 희생과 노고 덕분에 그 가족과 후손이, 우리가 모두 지금 건강하고 삶의 질이 높아진 사회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노화로 인한 고통을 맞게 되지만 치료받으면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2층의 정형외과를 찾아 아픈 곳을 물어봐 주는 원장님의 문진만으로도 위로받고 주사를 맞고는 안심하여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간다. 집으로 향하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은 가물가물 내 부모님의 모습이고 이제 곧 내 모습이다. 걸음이 좀 절뚝대고 느려도 마음만은 가볍고 평안하시길, 버스에 무사히 오르시길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