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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 그릇>매계·퇴계·노계

민경탁(경북대 평생교육원 강사)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7일
ⓒ 김천신문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은 사람의 정서를 풀어준다. 산은 정서를 가두지만 물은 풀어준다. 사람의 몸과 마음까지 씻어준다. 시냇물에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면 음풍과 가무와 풍류가 곁들여진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곳을 수련의 장, 힐링의 장소, 이상적인 삶의 공간으로 여기며 산다.
우리나라에는 시냇물에 비유해 자기 호를 지은 사람들이 허다하다. 조선 초기의 문신 조위는 매계(梅溪)로, 문장가 유호인은 임계(林溪)로, 우리나라 유학사상 가장 대표적인 학자로 알려지는 이황은 퇴계(退溪)로 호를 삼았다. 조선 후기 무인이며 문인이었던 박인로는 노계(蘆溪)를, 병자호란 때의 충신 김상용은 풍계(楓溪)를, 임진왜란 때의 문신 조응록은 죽계(竹溪)를 호로 썼다.
매계 조위(曺偉 1454~1503)는 김천 봉계에서 태어나 조선 초기 “두시언해” 편찬에 이바지하며 서문을 쓴 문신이다. 한시를 한글로 번역하여 한자, 한문을 잘 모르는 민중이 배워 세상에 눈 뜨게 했다. 지배언어에 갇힌 백성이 자기의 고유한 언어에 눈을 떠 새 세계를 발견하게 했다. “두시언해”에는 지금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고유어가 엄청나게 보관돼 있다. 그가 말년에 유배지에서 쓴 “만분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배가사로서 한국 운문문학의 기반을 확장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매계는 생애에 총 470여 편의 시문을 남겼다.
그는 매화를 남달리 사랑했다. 곁에 늘 매화를 두고 살아 사람들이 그 마을을 매계동이라 부를 정도였다. 젊은 시절부터 만년의 유배시절에 이르기까지 매화의 청절미를 예찬하며 실현하고자 했다. 매화의 강단과 지조와 청절을 닮고자 하여 그의 여러 편의 시와 “만분가”에 매화가 자주 등장한다.
매계의 문학을 살펴보면 시에 능한 관인이었던 그는 벼슬하여 관아에 나아감에 따른, 도학 탐구의 소홀함에 대해 늘 염려와 갈등에 젖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벼슬하여 관아에 나아감과 학문 탐구함을 상보적인 관계로 여기며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매계와 일제강점기 육영사업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최 송설당은 김천의 2현이라 할 수 있다.
알다시피 율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성리학의 양대 학파를 이룬 이황(李滉 1501~1570)은 퇴계(退溪)를 호로 삼았다. 자신이 46 때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 토계(兎溪 토끼내)에 집을 짓고 본격적으로 학문에 몰두하고자 한 뜻을 담았다고 한다. 퇴계란 퇴거계상(退居溪上)의 준말, 이에는 흐르는 물을 보며 날로 반성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 천원 권 지폐 뒷면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가 이 내력을 담고있다. 그가 안동 토계 머리에 조용히 앉아 책을 집필하는 모습을 겸재가 상상해 그린 것으로 전한다. 이 그림은 화첩 '퇴우이선생진적첩' 속에 들어 있다. 이 화첩은 국내 고미술경매 최고가로 낙찰, 리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데 보물 제585호이다.
퇴계가 우리 역사상 공직자 교육자 문학자 사상가 생활인으로서 전범을 보인 인물임은 널리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학자의 학문이 세계적으로 ‘-학’ 자를 붙여 불러지기는 퇴계학이 처음이라 한다.
원래 무인이었던 박인로(朴仁老 1561~1642)는 임진왜란 후 영천 노계에 들어 시작(詩作)과 안빈낙도로 살고자하는 의도로 노계를 호로 삼았다. 계곡에 널려 무심히 자라는 갈대같이 살고픈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의 가사 “태평사” “선상탄”은 무인다운 기개와 웅혼한 기상을 담은 전쟁문학, “누항사”는 임진왜란 후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안빈낙도하고자 한 선비 정신을 그린 유명 작품이다.
노계는 가사 뿐 아니라 시조 한시 등까지 합해 180여 편의 문학작품을 남겼다. 우리 문학사에서 송강(정철) · 고산(윤선도)와 함께 조선의 3대 문인으로 일컬어진다. 그가 전쟁의 비애를 극복하고 강호가도를 즐기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강렬한 염원을 그려낸 문학을 영천의 노계문학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노계는 포은, 최무선과 함께 영천의 3현으로 추앙받는다.
매계, 퇴계, 노계의 업적은 경북의 문화사업 자원 3각 벨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의 도산서원, 영천의 노계문학관은 이미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이에 비해 김천의 매계 관련 문화사업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매계문예수련원, 매계공원을 조성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문화 공간의 명소화(名所化)로 인한 문화관광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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