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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 그릇 - 신(新)이산가족 상봉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19일
신(新)이산가족 상봉

ⓒ 김천신문
박상태
수필가 ·전 관세청 차장 

# 7월 초부터 정부의 방침에 따라 면회가 제한적으로 재개되었습니다. 병원이 정해준 날짜에 맞춰 우리 5남매가 병원 1층 출입문 대형 유리창 문 앞에서 설레고 초조한 마음으로 어머니와의 면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휠체어에 타신 어머니께서 간호사와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유리창 저쪽에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어머니는 몇 달 새 몰라보게 야위었습니다. 하지만 안색은 좋아 보였습니다. 우리 5남매를 본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지셨습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제가 먼저 어머니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습니다.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엄마, 식사는 잘 하시고, 잠은 잘 주무세요?”
어머니는 대뜸 서운함을 드러내십니다.
“그동안 왜 안 왔어? 왜 나 보러 안 왔어?”
그 순간 어머니가, 혹시 자식들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실까봐 두려웠습니다.
“전염병이 돌아서 의사가 병원에 오지 못하게 해요. 우리는 오고 싶은데 병 옮긴다고.....그 동안 못 와서 미안해요.”
아들 삼형제는 그저 침통한 표정만 짓고 있는 데 두 여동생은 눈물부터 흘립니다. 여동생이 유리창에 손을 대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냅니다.
“엄마,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어요?“
“사랑해요 엄마. 전화만 하다가 이래라도 얼굴 보니까 좋다, 엄마. 그치?”
연신 말을 걸며 안부를 묻습니다.
어머니는 유리벽 바깥에만 머무는 가족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문 열고 들어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어.”
전염병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이십니다. 3형제는 그저 눈시울을 붉혔고 두 여동생은 급기야 흐느낍니다. 서로를 만질 수 없지만 유리창 사이로 손바닥을 맞대고 아쉬움을 달랩니다. 면회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10분! 남북 이산가족 상봉시간보다 짧은 10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와 가족에겐 터무니없이 짧은 면회시간이었습니다.

#환자 심모 씨(87)를 보러온 딸은 면회가 끝났다는 말에 힘겹게 한 마디를 건넵니다.
“아버지, 앞으로는 자주 올 수 있대요. 이제 자주 아버지 뵈러 올 게요.”
유리벽 건너의 심씨가 알아듣기 힘들어하자, 딸은 급하게 병원에서 준비한 작은 칠판에 ‘다음에 또 올 게요’ 라고 적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그 칠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 용인 요양원에 계시는 친구 장모님이 생신을 맞았습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이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병원에 갔지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족들이 묘안을 짰습니다. 가로, 세로 20cm정도의 흰 종이에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사랑해요’ 라는 글씨를 한 장에 한자씩 썼습니다. 그리고 그 종이를 13명 식구들이 한 장씩 들고 나란히 서서 유리창 너머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장모님께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장모님은 글을 읽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합니다. 하지만 그 분은 애석하게도 얼마 전 영면하셨습니다.

#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의 지역 언론 뉴스채널5(NewsChannel5)에서 본 뉴스입니다.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메리 다니엘((Mary Daniel)은 방문 금지 조치가 내려진, 지난 3월 11일 이후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서 지내는 남편 스티브(Steve)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메리는 남편과 소통하기 위해 화상통화를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이후 요양원에서 유리문을 통해 면회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울음을 터트려 마음이 무척 아팠다 합니다.
남편을 만날 방법을 찾던 메리는 요양원을 직접 방문해 남편을 만날 다른 방법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요양원에서는 메리에게 파트타임 설거지 업무를 제안했습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바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메리는 설거지, 바닥 청소, 그릴과 창고 정리 등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 마침내 남편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14일만이었습니다.

# “할아버지 저 청혼 받았어요!”
한걸음에 병실 유리창 앞으로 달려간 손녀는 할아버지에게 손에 낀 반지를 들어 보이며 결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치매로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창문으로 바짝 다가가 손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손녀는 결혼 소식을 알리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두 손 바닥을 창문에 댔습니다. 손녀도 할아버지 손바닥과 겹쳐지게 손바닥을 유리창에 댔습니다. 손녀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해.”
치매 환자인 할아버지가 또렷하게 손녀의 말을 받았습니다.
“나도 널 사랑한다. 니 결혼식에 이 할애비도 가야지.”
손녀는 치매 환자답지 않은 할아버지의 말씀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할아버지께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아주 특수한 곳 입니다. 밀폐된 공간, 공동생활, 면역력 저하.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환자의 건강은 신체적인 것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정신적인 면도 포함되기 때문에 환자의 뇌가 계속 활동하도록 하려면 가족과의 면회 등을 통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격리는 그들을 더 죽음에 가깝게 만들 뿐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달랑 10분 면회는 너무 짧습니다.
이창욱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이 가족과 장기간 만나지 못하면 우울감과 불안증, 외로움이 심해질 수 있다”며 “감염의 위험성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최대한 면회가 가능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코로나 19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기현상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자가 격리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낯선 용어들을 들으며 우리는 딴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생활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었는지 새삼 감사함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 처참히 무너지는 일상을 겪으며 인간의 나약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미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제 책상 앞에 놓인 어머니의 큰 사진이 눈에 들어옵니다. 요즈음 같은 이런 딴 세상을 살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잘 해드리지 못한 불효에 눈시울이 촉촉해 지는 아침입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0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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