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1-03-03 오후 05:43:1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뉴스 > 칼럼

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최송설당(崔松雪堂)과 북한산 암각서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04일
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
최송설당(崔松雪堂)과 북한산 암각서

최재호(1945 ∼ )

칼럼니스트.
김천 부곡동 출신. 김천중, 고교 졸업.
건국대 정외과 졸업, 이스라엘 벤구리온대학교 박사.
김포공항 운항관제사, 교통부 항공국 근무.
건국대 교수 역임.


송설당(松雪堂 1855~1939)의 성(姓)은 최씨요, 본관은 화순(和順)이다. 경북 김천에서 아들하나 없이 딸만 셋인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송설당의 집안은 평안도 선천 부호군이었던 증조부 최봉관(崔鳳寬)이 홍경래의 난을 맞아 성(城)의 함락을 막지 못하고, 처가마저 난군에 연루되었다는 죄로 옥사하고, 4명의 자식들이 모두 전라도 고부로 유배되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서당 훈장이었던 부친 최창환(崔昌煥)으로 부터 이 같은 집안의 내력을 전해들은 송설당은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킬 것을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하였다.
송설당은 주변의 성혼 논의도 뿌리치고 삯바느질로 받은 품삯으로 손바닥만 한 밭 한 뙈기를 사서, 그것을 다시 마당만한 논으로 불리며,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상당한 재력을 갖추는데 성공하였다. 그녀는 6촌 동생 광익(光翼, 후일 영릉참봉을 거쳐 정삼품 중추원의관으로 승차)을 부친의 양자로 삼아 대를 잇게 하고, 자신은 보다 본격적으로 가문의 신원(伸寃)을 위해 상경할 채비에 들어갔다. 송설당은 나이 40세가 되던 해 상경하여 사대부들과 교제하던 중 엄비(嚴妃)를 만나고, 황태자 이은(李垠, 영친왕)이 탄생하자 그의 보모로 입궐하였다.
송설당은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쾌불 무량수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9호)을 한미산(노고산) 흥국사에 봉안하고, 만일기도를 주관하는 등 극진한 불심(佛心)으로 황실의 신임을 받았다. 1901년 고종황제의 특명으로 몰적(沒籍)된지 무려 89년 만에 조상의 명예가 회복되었다. 그녀는 무교동(현 SK빌딩자리)에 쉰다섯 칸짜리 저택을 짓고, ‘송설당’이란 현액을 내걸었다. 송설당이란 이름은 이처럼 처음엔 당호였으나, 다음엔 당신의 호(號)로, 나아가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송설당은 황실의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공익사업과 빈민구휼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명산대찰을 찾아 국태민안과 조상의 명복을 빌며 시주하였다. 삼각산 부왕사는 일찍이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백일기도를 드리고 왕좌에 올랐을 만큼 명당중의 명당이다. 1915년, 송설당이 이곳에 머물며 기도하는 동안, 동생 광익이 석공 이한모에게 의뢰하여 새긴 것이 바로 “崔松雪堂 弟 光翼 乙卯”이다. 이와 같은 암각서는 경북 김천 청암사, 경남 창영 도성암 등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있고, 금강산에도 대형 암각서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송설당은 광익의 맏아들 석태(족보명: 석열)에게 평안도 정주와 선천지역에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선영을 찾아 제(祭)를 올리게 하고, 자신은 고양시 고양동 목암리에 소재한 13대조 훈(壎, 교하현감), 12대조 세준(世俊, 병조좌랑), 11대조 영경(永慶, 대사헌), 여경(餘慶, 호조참의) 형제의 묘소 등 3대 조상들의 선산에 석물과 제전(祭田)을 마련하는 등, 가문의 현창(顯彰)사업을 빠짐없이 마무리 하였다. 하지만 송설당에게는 아흔까지 천수를 누리다 타계하신 모친께서 “너의 재산을 육영사업에 쓰라”는 유언을 실천할 마지막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송설당은 종교적 동지인 만해 한용운, 김천의 유지 이한기 등과 상의하여 당시 경북 북부지역의 숙원사업이던 고등보통학교(현 김천중고등학교) 건립에 전 재산 32만원을 쾌척하였다. 개화기와 근대라는 격동의 시대에 태어나 여성으로서 최대의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마지막으로 ‘비움의 철학’을 실천하는 숭고한 순간이었다. 또한 송설당은 조선왕조 최후를 장식한 최고의 여류시인이었다. 그녀가 남긴 200여 수의 한시와 60여 편의 국문가사는 후학들에 의해 박사학위 논문 등을 통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사학을 육성하여 민족정신을 함양하라(永爲私學 涵養民族精神)’는 그녀의 외침은 사후 8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의 귓전을 울리는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 “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을 신설, 역사적 인물을 계절에 맞게 조명하면서, 세상을 사는 의미와 글로벌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21년 02월 04일
- Copyrights ⓒ김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많이 본 뉴스 최신뉴스
김천상의 24대 회장으로 안용우 부회장 추대
송언석 의원, `김천역 증·개축`사업 확정
김천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제10기 수료식 가져
감호지구 도시재생뉴딜사업 목재학교 운영
한국자유총연맹, ‘2021년도 정기총회’ 개최
김천상무프로축구단 홈페이지 가입하고 MD물품 할인받자!
이철우 도지사, 코로나19 첫 백신 접종현장 방문
어모면, 제2기 주민자치위원회 위촉식
봄처럼 따뜻한 김천시 지례면 집배원 선행이야기
Happy together 김천! 반달곰 오삼이와 함께!
기고
공공의료 확충을 서두를 때이다감염병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하여경북보건대학.. 
확연하게 차가워진 공기에 달력을 쳐다보니 보니 벌써 12월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습.. 
칼럼
최재호의 역사인물 기행최재호(1945 ∼ )송설당(松雪堂 1855~1939)의 성(姓)은 최.. 
왕복 삼십 리를 걸어서 중학교에 다녔다. 그때 나는 추풍령 경사 내리닫는 직지사역 .. 
추수가 끝난 벌판을 붉게 물들이며 낙엽 진 황악산 너머로 12월의 마지막 해가 진다... 
김천부동산
김충섭 김천시장 현장행정 강화,“소통이 ..  
김천시,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이자지원 시..  
김천시, 20대 청년 주거안정을 위한“주거..  
김천시, 지적측량수수료 감면 추진!  
2021년 공동주택 부대복리시설 개선사업  
김천신문 / 주소 : (39607) 경북 김천시 김천로 62(평화동) 장원빌딩 6층 / 발행·편집인 : 김영만 / 편집국장 : 이성훈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의숙 / Mail : kimcheon@daum.net / Tel : 054)433-4433 / Fax : 054)433-200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67 / 등록일 : 2011.01.20 / 제호 : I김천신문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2,916
오늘 방문자 수 : 11,826
총 방문자 수 : 47,393,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