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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보이지 않는 일본의 칼

김용대(변호사)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8년 09월 17일
ⓒ 김천신문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당시 국가대 국가간 방식으로 무상 3억불, 재정차관 3억불(1억불은 상업차관)의 합의가 있었다. 일본이 돈을 주는 이유는 우리 정부의 청구에 응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 돈은 손해배상금이 아니었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2005년과 2006년에 일본의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피해자 9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등 두 곳을 상대로 각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대법원은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고 파기환송심 고등법원은 미쓰비시중공 등이 각각 1인당 8천만원과 1억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 기업은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고 두 사건은 2013년 8월, 9월에 대법원으로 올라왔다. 통상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파기환송심 결과를 그대로 받아 신속하게 선고하는데 두 소송은 기약 없이 미루어졌고 현재 5년이 지났다.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이 넘는 동안 9명의 피해자 가운데 7명이 사망했다.

최근 검찰수사에서 2013년 12월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대법원에 위 소송 판결을 지연시켜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법원행정처가 외교부를 배려해 주고 법관의 해외 파견을 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도 발견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 일본과 10억엔의 위안부합의를 한 직후 “징용피해자가 승소하는 판결이 확정되면 나라 망신”이라고 했다는 주장도 있다. 적어도 당시 대법원은 외교부의 요청에 따라 판결을 미뤄온 것이라는 의심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합의로 식민지배에 관한 법적 문제는 모두 종결되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연 그 합의는 절대적인 것일까? 한일국교정상화는 사실상 미국의 요구(강요)에 의하여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미국을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때 케네디 대통령은 한일국교정상화를 요구했다. 당시 미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중국과 소련에 대응하려는 외교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2년 김종필 당시 중정부장과 오히라 일본 외상의 비밀회담에서 합의금액이 결정되었다. 당초 김종필은 8억 달러를 요구했지만 오히라는 최고액 7천만 달러를 제시했다. 일본은 6·25전쟁이 끝날 무렵 무려 20억불의 외화사용 가능액을 가질 수 있었다. 일본은 우리를 약탈한 죄과가 있지만 6·25전쟁기간 중 경제는 급성장했다. 무상 3억불은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외교적·재정적 문제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2년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협정과 상반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은 너무 아둔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구권 합의가 영구적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치욕적이지만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키케로는 “역사에 무지한 사람은 영원히 어린아이로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재판에 관하여 일본측 입장을 견지한 박근혜 정부는 식민지배 가해자를 옹호한 것이 된 셈이다. 마치 역사를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은 집단의 이익은 고려했지만 사법부의 독립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과거 1970년대 사법부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 소위 ‘사법살인’을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던가?
금년은 일본에서 1868년 메이지 연호가 시작된 지 150주년 되는 해다. 지금의 아베 총리는 메이지 유신 세력의 후손이다. 메이지 유신세력은 식민지배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우리 민족은 그 세력의 최대 피해자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데딕트는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지적했다. 대법원의 승소판결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한을 무엇으로 풀겠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의 보이지 않는 칼을 맞아야 하겠는가?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8년 0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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