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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한 그릇-역사와 문화를 향한 열정

이 일 배
(수필가, 전 인동고 교장)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08일
ⓒ 김천신문
계절마다 한 번씩 찾아가는 역사 문화 유적 탐방 길을 나선다. 이번 길에서는 육백 년 역사를 지닌 경기도 고양의 문화를 탐사해 보기로 하고, 몇 곳을 정하여 길을 돋우었다. 먼저 행주산성을 찾았을 때는 점심나절이 가까웠다. 점심시간에 쫓겨 임란 대첩기념비와 기념관, 토성을 주마간산으로 스쳤다. 점심을 먹고 서삼릉에 이르렀으나,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어 이 또한 세세히 살피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ㄷ자형 팔작지붕으로 번듯하게 갖춰진 어느 한옥 너른 마당에 서 있는 우람한 석비가 보인다. 크고도 기이한 비석이다 싶어 다가가 안내판을 보니, ‘광개토대왕비’라고 적혀 있다.
이런 곳에 웬 광개토대왕비라니? 집주인 임순형 씨가 나와 설명을 해주는데, 중국 길림성 집안에 갔다가 거대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비’ 곧 광개토왕비와 그 비문을 보고 민족적인 자존감과 함께 광개토왕의 웅혼한 기상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비석에 버금가는 크기의 돌을 중국에서 어렵게 구하여 5년여에 걸친 공정 끝에, 비에 쓰인 1802자를 그대로 각자하여 우리나라로 들여왔다고 한다.
원비의 모양을 본떠 높이가 6.39m, 각 면 너비가 1.5m, 무게가 47톤이나 되는 빗돌을 중국에서 제작하여 국내로 옮겨와, 이 자리에 세우기까지에 든 공력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난했다고 한다. 안내판의 입석 후기에서 밝히듯 ‘우리 선조들의 불굴의 기개와 웅혼한 기상을 후손에게 길이 전해주고자’하는 굳은 뜻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비용은 얼마나 들었느냐고 물으니, 선조의 높은 뜻을 기리는 일을 어찌 값으로 따질 수 있을 것이냐며 웃었다. 역사와 민족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긍지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임 씨의 우직하다 싶기까지 한 열정과 비석의 엄청난 규모에 대한 경탄을 안고 송강마을로 향했다.
송강문학관을 찾아가는데, 이은만 관장이 마중을 나왔다. 송강마을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 주옥같은 가사 작품을 남긴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이 부모의 시묘를 살면서 기거한 곳으로, 송강이 살던 집을 문학관으로 꾸며 그를 기리고 있다고 했다. 이 관장의 안내를 받아 마을 안 산자락 밑에 자리하고 있는 문학관에 들어가니 송강의 시 몇 편과 몇 사람의 휘호가 걸려 있고, 고서 몇 권이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조금은 실망감도 느끼며 이 관장의 설명을 들어 나갔다.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듣던 송강고개, 송강낚시터, 송강보가 정철의 그 ‘송강’을 뜻하는 줄 모르다가 고양의 지명유래집을 만드는 데 참여할 기회가 있어서, 그때 송강이 이곳 마을의 아름다운 산천을 작품에 담으며 10여 년 동안 머물었던 곳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와 송강의 행적을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써 부모와 장자의 묘를 찾아 단장하고, 평생 송강을 섬기며 따르던 의기(義妓) 강아(江娥)의 묘를 발굴하여 송강과 얽힌 사연을 새긴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송강의 업적과 정신을 선양하기 위하여 각계에 동참을 호소하는 한편, 스스로 사재를 털어 문학관과 시비 공원을 조성하고, 해마다 송강문학제를 열어 송강의 문학을 널리 알리고 있다고 한다. 고양에는 왕릉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가 흔하다 보니, 그의 이러한 활동에 당국의 관심과 지원을 받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글을 더욱 빛나게 한 송강의 공적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에 못지않은 것임을 굳게 믿으며, 그 믿음을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이라 했다.
신원동 큰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그가 조성한 시비 공원에는 임창순(任昌淳) 선생이 휘호한 ‘松江鄭澈詩碑’라는 큰 비석과 함께 이 관장이 정철과 송강마을의 내력을 새긴 비석이며 송강의 시, 송강의 제자 석주(石洲) 권필(權韠, 1569~1612)이 송강 유택을 찾은 감회를 적은 시비를 세워놓았다. 시비 공원을 함께 거닐며 이 공원을 조성하는데도 만난을 무릅써야 했지만, 앞으로도 송강마을을 알리고 송강 문학을 드높이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쳐나갈 것이라며 76세 이 관장은 비장한 각오를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역사가 무엇이고 문화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갖은 힘을 다 들여 거대한 광개토왕비를 본떠 세우고, 송강의 문학관을 열고 시비를 하나하나 세워나가는 임순형 씨와 이은만 관장을 보며, 사람살이에 있어서 가치로운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뜻있게 사는 길인가를 겸허히 돌아본다.
조상의 위업을 기리는 일을 어찌 물질로 값을 매길 수 있을 것이냐는 임 씨의 웃음소리며, 송강을 받드는 일에 여생을 걸겠다는 이 관장의 비장한 말씀이 귀로를 달리는 내내 목 안의 가시처럼 귓속에 걸려 있었다.
김천신문 기자 / kimcheon@hanmail.net입력 : 2019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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