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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음악

김천시단 - 몸종 석이의 비석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6.01.29 13:40 수정 2026.01.29 13:40

이복희(김천 지좌동 출신 시인·현대불교문인협회 사무국장)

                                  몸종 석이의 비석 

ⓒ 김천신문
황악산 바람재를 휘돌아 온 바람이
볼품없는 비석 앞에 멈춘다

닳아버린 글씨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
방초정 최씨담崔氏潭에 묻혀 380여 년 세상에 없던 비석
살아서도 죽어서도
있으나 마나 한 생이라니

정절을 지키고자 아씨가 연못에 뛰어들자
얼떨결에 함께 뛰어든 석이

양반은 나라님이 정려각을 세워주고
노비는 주인이 만들어준 비석조차 세우지 못하고
연못에 버려졌다는 소문만 떠돌았는데

최씨담 준설 공사 중에 발견됐다는
태어난 곳도 성도, 부모도 알 수 없는 충노忠奴
진흙의 시간에 깎여 돌덩이와 다를 바 없는 비석

최씨담에 내려앉은 배롱나무 꽃그늘이
석이의 꽃봉오리 가슴 같아
지나가던 바람이 돌아와 꽃잎 연못을 쓰다듬는다
잔물결도 숨죽인 채 들썩이는 못가에
그날의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방초정의 충노석이지비

■ 방초정은 현존 김천의 누정 중 가장 내력 깊은 누정이다. 조선 중기에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이정복(李廷馥 호 芳草) 부호군이 건립했는데 뒷날 몇 번 훼손, 병란으로 인한 화재 등으로 중건, 보수을 겪다가 후손 이의조(李宜朝 호 鏡湖)가 현 위치로 이전하여 중수한, 김천의 대표적인 문중 건립 누정이다.
임진왜란 때 갓 장가를 든 이정복의 신부가 신행을 갔다가 혼자 오게 되어 왜군으로부터 능욕을 당할 처지에 이르자 '깨끗하게 죽느니만 못하다'하고 명주옷으로 갈아입은 뒤 못에 몸을 던졌다. 이에 가족들과 종 석이도 뒤따라 투신하였다. 이정복은 나이 어린 신부를 그리워하며 여러 해 울고 또 울면서 누정을 지어 '방초정'이라 편액을 걸었다.
방초정 앞에 연못을 조성, '최씨부인의 연못'이라 이름하여 지금껏 그 부인의 절의를 기리고 있다. 먼 훗날 연못 준설 공사 도중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가 발견되어 또 한번 세인을 놀래고 있다. 충노 석이의 비석이 오늘도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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