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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수필

기행수필 - 무흘구곡과 청암사 <상>

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6.06.11 10:51 수정 2026.06.11 10:51

민경탁(수필가)

무흘구곡과 청암사

ⓒ 김천신문
해 밝은 여름날이다. 무흘구곡과 청암사를 완상해 보고 싶어 집을 나선다. 성주 지역에서 몇 년을 근무했지만 자주 찾아보진 못 했다. 대가천 물머리 회연서원(檜淵書院)에 닿았다.

서원 뒤 둑길을 걸어 노송 우거진 숲 속에 드니 몸이 서늘해진다. 피톤치드가 많다는 노송 숲 산등성이에 바위 하나가 알몸으로 앉아 있다. ‘봉비암’이라 문신을 새겼다. 산등성이 암벽 아래 펼쳐진 물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이 자리에서 벌어졌을 옛 선비의 풍류를 짐작하게 한다. 암벽 중간쯤에 새긴 시 한 수가 비바람에 마모돼 흐릿하다. 무흘구곡 제1곡이다. 봉비암 풍광은 대가천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서 바라보아야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가천 다리를 건너니 한강대(寒岡臺)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대가천을 거슬러 난 좁은 둑길로 들어선다. 들길은 트레킹 코스가 되어 있다. 승용차 교행이 불가능한 둑길을 따라 북쪽으로 얼마를 더 가니 대가천을 낀 등성이에 닿는다. 산등성이로 오르는 나무 사닥다리를 오른다. 숲길이 줄곧 이어진다. 숲길 다 한 정상에 이르니 한강정(寒岡亭)이 있다. 정자 아래로 내려가니 기암, 기암 아랜 검푸른 대가천 물이 숙연히 흐르고 있다. 정구(鄭逑 1453 중종 38~1620 광해 12) 선생의 호가 왜 ‘한강(寒岡)’인지 알만하다. 무흘구곡 제2곡이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숙연히 흐르는 푸른 물을 굽어본다. 이곳 역시 건너편 수성리 냇가에서 접근해야 풍경을 전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무흘계곡을 거슬러 성주댐 쪽으로 향한다. 댐에 이르니 가야수도지맥 단지봉과 수도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형성하는 풍치가 전개된다. 계곡을 한참 오르니 외로이 배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 하나가 보인다. 한강 선생은 “누가 배를 이 산골에 감추었나”하고 시를 읊었다. 무흘구곡 제3곡 배바위다. 근래에 바위 위에 정자를 얹어 놓아 무학정(舞鶴亭)이라고도 한다.

산 초록, 물 초록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잇닿는 계곡이 굽이굽이, 몇 굽이인지. 어느 한 굽이를 막 돌아서는데 왼편에 우뚝 솟은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초록 숲 속에 날렵한 바위기둥이 연못 같은 시내에 발을 담그고 서 있다. 선인(先人)은 바위의 위용에서 인생사 시름과 이상의 갈피를 잡으려 했나보다. 제4곡 선바위다.

ⓒ 김천신문
굽이굽이 휘어진 계곡을 계속해 올라간다. 도로 가에 나타나는 안내판을 보니 금수면이 다 끝나가려 하는 것 같은데 소나무와 대나무가 하늘을 가린 숲 속에, 괴석이 도장 하나를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부턴 김천 증산면이다. 안내판에 고려 때부터 선비가 관인(官印)을 버리고 도의를 설파하며 살기를 원했던 곳이라 전한다. 산봉우리가 하늘을 반쯤 가린, 초록 계곡으로 내려가 물에 발을 담그니 몸과 마음이 함께 씻기는 것 같다. 제5곡 사인암(捨印巖)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인간의 도의심을 강설하며 그 생활을 시로 남겼다.

맑은 공기를 타고 계곡을 지속해 오르니 작은 솔숲 기암 아래에 너럭바위를 타고 옥 같은 물이 넘쳐 흘러내린다. 비탈 바위 위에 정자 하나가 예쁜 장난감 같이 앉아있다. 천혜의 자연과 살뜰한 인공이 이렇듯 오묘하게 조화할 수 있을까. 제6곡 옥류동이다. 어디선가 왜가리 서너 마리가 날아들더니 정자 뒷산으로 날아간다.

옥류정에서 서북쪽으로 시루 같은 봉우리 하나가 나타나 보인다. 속칭 시루메, 시루봉이다. 옳아, 증산(甑山)이란 지명의 어원이 여기 있구나. 시루봉 아래엔 쌍계사란 절이 있었다 전한다. 증산면행정복지센터를 찾아 들어가니 해설사 한 분이 관람자를 친절히 맞는다. 절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6.25전쟁 때 여자 빨치산이 불을 질러 타 없어졌단다. 뒷마당에 절의 주춧돌들을 모아 설명판 만 세워 놓았다. 원랜 청암사와 수도암이 이 절의 말사였다고. 청암사에서는 시루봉에 솟는 달을 청암사 제1경으로 꼽는다고 한다.

해설사께 고마움을 전하고 돌아서 한적한 들길을 달리니 삼거리가 나온다. 수도암으로 가는 길과 청암사로 향하는 길이 갈라지는데, 우선 수도암으로 가는 왼편 길로 접어들어 본다. 겹겹 산봉우리 아래로 산길이 뻗어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도로변엔 버스와 승용차가 빼곡하다. 이제부턴 차를 세워두고 걷는다. 아래쪽 계곡에 제7곡 만월담이 나타난다. 달빛이 어리비칠 돌여울이다. 최근 주위에 소공원과 주차장을 마련하느라 원형이 많이 변형된 듯하다. 못의 운치를 느낄 수 없어 아쉽다.

계곡은 올라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길가에 세워 둔 관광버스와 승용차 행렬을 뚫고 계곡을 내려가 본다. 병풍 같은 암벽을 타고 흐르는 물이 몇 구비 흘러내리다가 하얀 너럭바위에서 맴돌고 있다. 이름지어 와룡암, 제8곡이다. 작은 폭포가 완만히 누운 바위 위로 서늘한 기운을 맘껏 내뿜고 있다. 피톤치드 가득할 것 같다. 바위 위에 드러누워 보고 싶은데 이미 많은 선남선녀가 자유로이 자리잡아 있으니.

와룡암에서 나와 계곡을 더 오르니 오른편으로 무흘정사(武屹精舍)가 나타난다. 한강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62세 때 터 잡아 지어 강술하던 공간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안개와 구름, 바위와 물, 꽃과 새와 어울려 도학의 해법을 얻고자 했나 보다. 선생의 만년 생활상을 짐작하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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